"애국가, 안창호가 지은 歌辭들과 시상·표현 일치" 신문에서 퍼온 역사


"애국가 가사는 안창호가 한말에 지은 애국계몽 가사(歌辭)들과 기본 생각·시상(詩想표현이 거의 일치한다."

'윤치호설()''안창호설'이 대립하고 있는 애국가 작사자 논쟁에 원로 사회사학자인 신용하(81) 서울대 명예교수가 뛰어들었다. 신 교수는 '대한민국학술원통신' 4월호에 실린 '애국가 작사(作詞)는 누구의 작품인가'라는 기고에서 안창호 작() 가사들의 내용을 애국가 가사와 대조하여 "애국가 가사는 안창호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신용하 교수에 따르면, 애국가 2절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氣像)일세'는 안창호의 '한양가' 1'남산 위에 송백(松柏)들은 사()시로 푸르다/청정한 산림 새로 들리는 바람소리'와 비슷하다. 애국가 3'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一片丹心)일세'는 안창호의 '높은 덕을 사모하며' 3'가을 하늘 반공 중에 높이 빛난 명월(明月)인 듯/흠도 없고 티도 없는 뚜렷하게 밝은 마음'과 거의 동일하다. 애국가 4'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는 안창호의 '대한청년 학도들아'4'상하귀천 물론하고 애국정신 잊지마세/편할 때와 즐거울 때 애국정신 잊지마세'와 일치한다. 신 교수는 애국가 1'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는 안창호의 '우리나라' 4'태산이 변하여 바다 되다/바다가 변하여 들이 된들/나라 사랑하는 내 맘 변할손가'와 시상(詩想)이 같다고 분석했다.

1908윤치호 역술 찬미가에 수록된애국가’.

신용하 교수는 애국사상을 높이는 데 국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안창호가 미국에서 돌아온 19073월 이후 애국가 가사를 지었고 19089월 평양 대성학교를 설립할 무렵 공개했다고 추정했다. 이때 독립협회와 배재학당에서 불렀던 '무궁화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를 후렴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1908년 나온 '윤치호 역술(譯述) 찬미가'에 이 '애국가'가 실린 것은 당시 대성학교 교장이었던 윤치호가 수집했다고 보았다. 안창호는 19196월 상해 임시정부의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대리로 취임한 뒤 애국가 4절의 '님군을 섬기며'가 공화정인 대한민국에 맞지 않는다며 '충성을 다하여'로 고쳤다. 신용하 교수는 "내년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애국가 작사자를 '미상(未詳)'에서 '안창호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2018.03.29., 이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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